고려 시대의 문신(?~1127). 자는 처후(處厚). 선종에서 인종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많은 공을 세웠으며, 예종 때에는 여진이 9성(城)의 반환을 요구하자 국방상의 난점을 들어 이를 반환하게 하였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음양지리에 관한 여러 책을 가려 뽑아 ≪해동비록(海東祕錄)≫을 산정(刪定)하고, 박승중(朴昇中) 등과 더불어 ≪시정책요(時政策要)≫, ≪정관정요주(貞觀政要註)≫ 따위를 편찬하였다.
조선 전기의 문신(1486~1521).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菴)·고봉(孤峯).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장원하고, 부제학과 도승지를 거쳐 대사성·예문관 제학을 지냈다. 조광조 등과 함께 미신 타파와 향약의 전국적 시행을 위하여 힘썼다. 산사무옥 때에 사사(賜死)되었다.
명사 · 조선 중기의 문신(1614~1636). 자는 여남(汝南). 후금(後金)이 국호를 청(淸)으로 고쳤을 때에 명나라와의 의리를 위하여 그 승인을 반대하고, 병자호란 때에 강화로 가서 성을 사수하다가 함락 직전에 김상용과 함께 분신자살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명사 · 고려 시대의 문신(?~1127). 자는 처후(處厚). 선종에서 인종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많은 공을 세웠으며, 예종 때에는 여진이 9성(城)의 반환을 요구하자 국방상의 난점을 들어 이를 반환하게 하였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음양지리에 관한 여러 책을 가려 뽑아 ≪해동비록(海東祕錄)≫을 산정(刪定)하고, 박승중(朴昇中) 등과 더불어 ≪시정책요(時政策要)≫, ≪정관정요주(貞觀政要註)≫ 따위를 편찬하였다.
명사 · 조선 전기의 문신(1486~1521).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菴)·고봉(孤峯).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장원하고, 부제학과 도승지를 거쳐 대사성·예문관 제학을 지냈다. 조광조 등과 함께 미신 타파와 향약의 전국적 시행을 위하여 힘썼다. 산사무옥 때에 사사(賜死)되었다.
명사 · 조선 후기의 문신(1680~1722). 자는 필형(必亨). 호는 죽취(竹醉). 신임사화 때에 그의 아버지 창집이 노론 사대신(老論四大臣)의 한 사람으로 사사(賜死)되자 그도 부령(富寧)에서 처형되었다. 저서에 문집 ≪죽취고≫, 편서 ≪증보삼운통고(增補三韻通考)≫가 있다.
명사 · 수필가·독문학자(1908~?). 호는 청천(聽川). 해외 문학 연구회에 참여하여 해외 문학의 소개에 진력하는 한편, 1931년에 극예술 연구회를 조직하여 신극(新劇) 운동을 벌였다. 광복 후에는 서울 대학교·성균관 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작품을 통해서 삶에 대한 깊은 애착을 보여 주었고, 수필을 본격 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수필집으로 ≪인생 예찬≫, ≪생활인의 철학≫ 따위가 있다.
명사 ·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1574~1656).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김장생의 아들이며 지평·집의를 거쳐, 효종 때에 이조 판서가 되어 북벌을 계획하였으나, 김자점이 이 사실을 청나라에 밀고하자 관직을 사임하고 예학(禮學)을 연구하였다. 저서에 ≪신독재집≫이 있다.
명사 · 조선 중기의 문신(1543~1599). 자는 숙진(叔珍). 호는 눌암(訥菴). 임진왜란 때에 접반사가 되어 명나라의 지원군을 인도하고, 일본과의 강화 회담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경제 정책의 전문가이며, 문장에도 뛰어났다. 예조 판서, 대사헌, 이조 판서 등을 지냈다.
명사 · 경상북도 서남부에 있는 시. 경부선과 경북선이 나뉘는 교통의 요지로, 농산물의 집산지이며 교육의 중심지이다. 쌀·보리·콩·목화·고치·포도 따위의 농산물과 규석·금·은 따위의 광산물이 나며, 금오산성지(金烏山城址)·직지사·쌍계사·봉황대(鳳凰臺)·원계 서원(遠溪書院) 따위의 명승지가 있다. 1995년 1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금릉군을 통합하여 도농 복합 형태의 시를 이루었다. 면적은 1,009.5㎢.
명사 · 구한말의 학자(1819~1891). 자는 치장(稚章). 호는 중암(重庵). 이항로의 문인으로, 고종 18년(1881)에 영남 유생들의 위정척사 운동을 후원하였으며, 그해 7월 상소하여 척양 척왜(斥洋斥倭)를 주장하였다가 섬에 유배되었으나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뒤 풀려났다. 저서에 ≪학통고(學統考)≫, ≪척양대의(斥洋大義)≫ 따위가 있다.
명사 · 경상남도 동남부에 있는 시. 낙동강 하구에 있으며, 부산광역시의 위성 도시로서 교통이 편리하여 농산물의 집산지를 이루고 있다. 김해평야는 예로부터 영남의 곡창 지대로서, 쌀·보리·밀·콩·목화 따위가 난다. 원예 농업과 수산, 축산, 임산도 활발하다. 김수로왕릉, 허후릉(許后陵), 조개더미, 봉황대 따위의 명승지가 있다. 면적은 463.361㎢.
명사 · 평론가·불문학자(1942~1990). 본명은 김광남(金光南). 1962년에 평론 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프랑스 현대 문학과 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주로 실존적 정신 분석의 방법으로 평론을 썼다. 저서에 ≪존재와 언어≫, ≪상상력과 인간≫, ≪문학 사회학≫ 따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