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학자(1899~1964). 호는 범산(梵山). 3·1 운동 때 불교계 만세 독립 시위에 참가하였고, 1938년에 만당(卍黨) 사건으로 전주에서, 1942년에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함흥에서 복역하였다. 불교 중앙 총무원장, 문교부 장관, 원자력원장, 동국 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조선 중기의 문신(1570~1652).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서간노인(西磵老人). 대제학, 이조 판서, 예조 판서, 공조 판서, 병조 판서를 지냈다. 저서에 ≪야인담록(野人談錄)≫·≪풍악문답(豐岳問答)≫ 따위가 있고, ≪청구영언≫ 따위의 가곡집에 시조 4수가 전한다.
명사 · 독립운동가·학자(1899~1964). 호는 범산(梵山). 3·1 운동 때 불교계 만세 독립 시위에 참가하였고, 1938년에 만당(卍黨) 사건으로 전주에서, 1942년에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함흥에서 복역하였다. 불교 중앙 총무원장, 문교부 장관, 원자력원장, 동국 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명사 · 조선 중기의 문신(1570~1652).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서간노인(西磵老人). 대제학, 이조 판서, 예조 판서, 공조 판서, 병조 판서를 지냈다. 저서에 ≪야인담록(野人談錄)≫·≪풍악문답(豐岳問答)≫ 따위가 있고, ≪청구영언≫ 따위의 가곡집에 시조 4수가 전한다.
명사 · 실업인·정치가(1913~1975). 호는 성곡(省谷). 1936년에 보성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양 통신 사장을 거쳐 국회 의원이 되어 공화당 재정 위원장, 중앙 위원회 의장 등 국회의 요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또한 쌍룡 양회, 쌍룡 산업의 회장을 지내는 등 재계에서도 활약하였다.
명사 · 시인(1896~?). 본명은 희권(熙權). 호는 안서(岸曙)·안서생(岸曙生). ≪창조≫·≪폐허≫의 동인으로 활약하였고, 상징주의 시를 번역·소개하여 한국 신시(新詩)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번역 시집에 ≪오뇌의 무도≫, 시집에 ≪해파리의 노래≫ 따위가 있다.
명사 · 조선 고종 때의 정치가(1851~1894). 자는 백온(伯溫). 호는 고균(古筠)·고우(古愚). 근대 부르주아 혁명을 지향했던 급진 개화파의 지도자로 갑신정변을 주도하였으며, 우리나라 개화사상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종 31년(1894)에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자객 홍종우(洪鍾宇)에게 살해되었다. 저서에 ≪기화근사(箕和近事)≫, ≪치도약론(治道略論)≫, ≪갑신일록(甲申日錄)≫ 따위가 있다.
명사 ·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1540~1603). 자는 숙부(肅夫). 호는 동강(東岡)·직봉포의(直峯布衣).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대사성을 거쳐 대사헌, 이조 참판을 지냈다. 선조 22년(1589) 기축옥사 때에 유배되었다가 임진왜란 때에 석방되었다. 배소(配所)에서 ≪속강목(續綱目)≫ 15권을 편찬하였다. 저서에 ≪동강집≫, 편저에 ≪경연강의(經筵講義)≫ 따위가 있다.
명사 · 고려 말기의 무신(?~1386). 공민왕 11년(1362)에 홍건적을 대파하여 이듬해 서울을 수복한 공으로 이등 공신,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 공신이 되었다. 우왕 때에 김해군(金海君)에 봉해지고 문하평리에 임명되었으나, 여러 번 유배를 되풀이하다가 우왕 12년(1386)에 순천으로 유배 가는 도중에 죽었다.
명사 ·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1580~1658).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 한성부 우윤·도승지·우의정·영의정 등을 지냈으며, 효종 때에 대동법을 실시하게 하였고 실학자 유형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구황촬요≫, ≪잠곡필담≫ 따위가 있다.
명사 · 조선 중기의 문신(1614~1636). 자는 여남(汝南). 후금(後金)이 국호를 청(淸)으로 고쳤을 때에 명나라와의 의리를 위하여 그 승인을 반대하고, 병자호란 때에 강화로 가서 성을 사수하다가 함락 직전에 김상용과 함께 분신자살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명사 · 고려 시대의 문신(?~1127). 자는 처후(處厚). 선종에서 인종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많은 공을 세웠으며, 예종 때에는 여진이 9성(城)의 반환을 요구하자 국방상의 난점을 들어 이를 반환하게 하였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음양지리에 관한 여러 책을 가려 뽑아 ≪해동비록(海東祕錄)≫을 산정(刪定)하고, 박승중(朴昇中) 등과 더불어 ≪시정책요(時政策要)≫, ≪정관정요주(貞觀政要註)≫ 따위를 편찬하였다.
명사 · 조선 전기의 문신(1486~1521).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菴)·고봉(孤峯).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장원하고, 부제학과 도승지를 거쳐 대사성·예문관 제학을 지냈다. 조광조 등과 함께 미신 타파와 향약의 전국적 시행을 위하여 힘썼다. 산사무옥 때에 사사(賜死)되었다.
명사 · 조선 후기의 문신(1680~1722). 자는 필형(必亨). 호는 죽취(竹醉). 신임사화 때에 그의 아버지 창집이 노론 사대신(老論四大臣)의 한 사람으로 사사(賜死)되자 그도 부령(富寧)에서 처형되었다. 저서에 문집 ≪죽취고≫, 편서 ≪증보삼운통고(增補三韻通考)≫가 있다.
명사 · 수필가·독문학자(1908~?). 호는 청천(聽川). 해외 문학 연구회에 참여하여 해외 문학의 소개에 진력하는 한편, 1931년에 극예술 연구회를 조직하여 신극(新劇) 운동을 벌였다. 광복 후에는 서울 대학교·성균관 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작품을 통해서 삶에 대한 깊은 애착을 보여 주었고, 수필을 본격 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수필집으로 ≪인생 예찬≫, ≪생활인의 철학≫ 따위가 있다.
명사 ·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1574~1656).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김장생의 아들이며 지평·집의를 거쳐, 효종 때에 이조 판서가 되어 북벌을 계획하였으나, 김자점이 이 사실을 청나라에 밀고하자 관직을 사임하고 예학(禮學)을 연구하였다. 저서에 ≪신독재집≫이 있다.
명사 · 조선 중기의 문신(1543~1599). 자는 숙진(叔珍). 호는 눌암(訥菴). 임진왜란 때에 접반사가 되어 명나라의 지원군을 인도하고, 일본과의 강화 회담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경제 정책의 전문가이며, 문장에도 뛰어났다. 예조 판서, 대사헌, 이조 판서 등을 지냈다.
명사 · 경상북도 서남부에 있는 시. 경부선과 경북선이 나뉘는 교통의 요지로, 농산물의 집산지이며 교육의 중심지이다. 쌀·보리·콩·목화·고치·포도 따위의 농산물과 규석·금·은 따위의 광산물이 나며, 금오산성지(金烏山城址)·직지사·쌍계사·봉황대(鳳凰臺)·원계 서원(遠溪書院) 따위의 명승지가 있다. 1995년 1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금릉군을 통합하여 도농 복합 형태의 시를 이루었다. 면적은 1,009.5㎢.
명사 · 구한말의 학자(1819~1891). 자는 치장(稚章). 호는 중암(重庵). 이항로의 문인으로, 고종 18년(1881)에 영남 유생들의 위정척사 운동을 후원하였으며, 그해 7월 상소하여 척양 척왜(斥洋斥倭)를 주장하였다가 섬에 유배되었으나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뒤 풀려났다. 저서에 ≪학통고(學統考)≫, ≪척양대의(斥洋大義)≫ 따위가 있다.
명사 · 경상남도 동남부에 있는 시. 낙동강 하구에 있으며, 부산광역시의 위성 도시로서 교통이 편리하여 농산물의 집산지를 이루고 있다. 김해평야는 예로부터 영남의 곡창 지대로서, 쌀·보리·밀·콩·목화 따위가 난다. 원예 농업과 수산, 축산, 임산도 활발하다. 김수로왕릉, 허후릉(許后陵), 조개더미, 봉황대 따위의 명승지가 있다. 면적은 463.361㎢.
명사 · 평론가·불문학자(1942~1990). 본명은 김광남(金光南). 1962년에 평론 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프랑스 현대 문학과 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주로 실존적 정신 분석의 방법으로 평론을 썼다. 저서에 ≪존재와 언어≫, ≪상상력과 인간≫, ≪문학 사회학≫ 따위가 있다.
명사 · 홍조류 김파랫과의 해조(海藻). 길이는 5~20cm, 나비는 2~8cm이고, 몸은 한 층의 세포로 된 잎 모양이며, 성숙 초기에는 무성 생식을 하다가 나중에는 유성 생식을 한다. 10월에 어린 엽체가 나타나고 12월 초까지 성숙한 개체로 자라나며, 12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 번성한다. 우리나라에서 양식하는 김의 주종을 이루며, 단맛은 많으나 향기가 적고 다소 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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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으로 시작하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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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간명사 ·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646~1732). 자는 직경(直卿). 호는 후재(厚齋). 박세채·송시열의 문인(門人)으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에 ≪동유예설(東儒禮 說)≫, ≪후재집≫ 따위가 있다.
김감명사 · 조선 전기의 문신(1466~1509). 자는 자헌(子獻). 호는 일재(一齋)·선동(仙洞). 대제학, 좌찬성 겸 예조 판서 등을 지냈고, 중종반정에 가담한 뒤에 병조 판서가 되었다.
김개명사 · 조선 중기의 문신(1504~1569). 자는 방보(邦寶). 호는 독송정(獨松亭). 대사간, 대사헌 따위를 지냈다. 조광조 일파를 비방한 일로 관직을 삭탈당한 뒤에 분사(憤死)하였다.
김구명사 · 독립운동가·정치가(1876~1949). 자는 연상(蓮上). 호는 백범(白凡)·연하(蓮下). 본명은 창수(昌洙). 동학 농민 혁명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 쫓겨 만주로 피신하여 의병단에 가입하였고, 3·1 운동 후 중국 상하이(上海)의 임시 정부 조직에 참여하였다. 1928년 이시영 등과 함께 한국 독립당을 조직하여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휘하였다. 1944년 임시 정부 주석으로 선임되었고, 8·15 광복 이후에는 신탁 통치와 남쪽 지역의 단독 총선을 반대하며 남북 협상을 제창하다가 1949년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당하였다. 저서에 ≪백범일지≫가 있다.
김귀명사 · 고려 말기의 무신(?~1367).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왕을 호종하였으며, 1363년 동북면 병마사가 되어 이성계와 함께 여진 정벌에 공을 세웠다. 신돈에게 살해되었다.
김근명사 · 고려 중기의 학자(?~?). 김부식의 아버지로 벼슬이 예부 시랑(禮部侍郞)에서 국자좨주(國子祭酒),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까지 올랐다. 박인량의 시문과 함께 ≪소화집(小華集)≫을 발간하였다.
김낙명사 · 고려의 개국 공신(?~927). 927년 견훤(甄萱)과 싸우다가 포위된 태조를 대장 신숭겸과 함께 구하고 전사하였다. 뒤에 예종은 그와 신숭겸을 추도하여 를 지었다.
방사무늬김명사 · 홍조류 김파랫과의 해조(海藻). 길이는 5~20cm, 나비는 2~8cm이고, 몸은 한 층의 세포로 된 잎 모양이며, 성숙 초기에는 무성 생식을 하다가 나중에는 유성 생식을 한다. 10월에 어린 엽체가 나타나고 12월 초까지 성숙한 개체로 자라나며, 12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 번성한다. 우리나라에서 양식하는 김의 주종을 이루며, 단맛은 많으나 향기가 적고 다소 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