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단어 뜻 찾기
ㄱ 단어 뜻 203 / 215
길목부터 김두헌까지. 단어를 선택해 모든 뜻과 사전 출처를 확인하세요.
- 길목 뜻명사
큰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가는 부분.
- 길몽 뜻명사
좋은 느낌의 꿈.
- 길바닥 뜻명사
길의 바닥 표면.
- 길반 뜻명사
한 길하고 반.
- 길배 뜻명사
구배의 하나. 한 번 절하고 다시 이마를 조아려 절한다.
- 길보 뜻명사
좋은 소식.
- 길복 뜻명사
운이 좋을 것이라고 나온 점.
- 길복벗김 뜻명사
전통 혼례에서 신랑이 초례(醮禮)를 마치고 관디를 벗을 때에 갈아입도록 신붓집에서 마련한 옷.
- 길봇짐 뜻명사
먼 길을 갈 때 꾸리는 봇짐.
- 길비 뜻명사
어질고 좋은 비(妃).
- 길사 뜻명사
‘선비’를 멋스럽게 이르는 말.
- 길상 뜻품사 없음 · 명사
‘길상하다’의 어근.
- 길상무늬 뜻명사
장수나 행복 따위의 좋은 일을 상징하는 무늬. 십장생이나 나비 따위의 소재로 구성한다.
- 길서 뜻명사
운수가 좋을 조짐.
- 길석 뜻명사
혼례식 따위의 기쁜 자리.
- 길성 뜻명사
길하고 상서로운 별. 이 별이 비치는 곳은 좋은 일이 있다고 한다.
- 길섶 뜻명사
풀이 나 있는 길의 양옆.
- 길세 뜻명사
강도가 길 가는 사람에게서 강제로 빼앗는 돈을 속되게 이르는 말.
- 길손 뜻명사
집을 떠나 먼 길을 가는 사람.
- 길시 뜻명사
길한 시각이나 때.
- 길신 뜻명사
길한 시절.
- 길쌈 뜻명사
실을 내어 옷감을 짜는 모든 일을 통틀어 이르는 말.
- 길쌈놀이 뜻명사
실을 내어 옷감을 짜는 모습을 나타낸 춤.
- 길어 뜻명사
좋은 소식.
- 길어지다 뜻동사
길게 되다.
- 길연 뜻명사
경사스러운 잔치.
- 길옆 뜻명사
길의 양옆.
- 길옥 뜻명사
좋은 옥.
- 길운 뜻명사
좋은 운수.
- 길월 뜻명사
운이 좋고 상서로운 달.
- 길이 뜻명사 · 부사
무엇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의 거리.
- 길인 뜻명사
성품이 바르고 복스러워 좋은 사람.
- 길일 뜻명사
민속 신앙에서 크고 중요한 행사를 하기에 좋다고 여겨지는 날.
- 길잡이 뜻명사
길을 인도해 주는 사람이나 사물.
- 길장 뜻명사
한자 부수의 하나. ‘镽’, ‘镺’ 따위에 쓰인 ‘長(镸)’을 이른다.
- 길재 뜻명사
고려 말기에서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1353~1419).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금오산인(金鰲山人). 삼은의 한 사람으로, 이색·정몽주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히고 성균관 박사가 되어 유생들을 가르쳤다. 저서에 ≪야은집≫, ≪야은언행습유(冶隱言行拾遺)≫ 따위가 있다.
- 길점 뜻명사
운이 좋거나 상서로운 조짐의 점.
- 길제 뜻명사
담제를 지낸 다음 날 정일(丁日)과 해일(亥日)을 택해서 신주를 사당에 안치하기 위하여 지내는 제사.
- 길조 뜻명사
좋은 일이 생길 징조.
- 길주 뜻명사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는 읍. 군청 소재지이다.
- 길죽하다 뜻형용사
→ 길쭉하다.
- 길즉대흉 뜻명사
점괘·사주 풀이·토정비결 따위에서, 신수가 아주 좋을 때는 오히려 아주 불길하다는 말.
- 길지 뜻명사
풍수지리에서, 후손에게 장차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는 묏자리나 집터.
- 길짐승 뜻명사
기어다니는 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
- 길징 뜻명사
좋은 일이 있을 조짐.
- 길쭉길쭉 뜻부사
여럿이 다 조금 긴 모양.
- 길쭉길쭉하다 뜻형용사
여럿이 모두 조금 길다.
- 길쭉이 뜻부사
조금 길게.
- 길쭉하다 뜻형용사
조금 길다.
- 길차 뜻명사
신라 때에 둔, 십칠 관등 가운데 열넷째 등급. 사두품 이상이 오를 수 있었으며, 집사성, 병부에 속하였다.
- 길청 뜻명사
군아(郡衙)에서 구실아치가 일을 보던 곳.
- 길초 뜻명사
→ 쥐오줌풀.
- 길치 뜻명사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서 나는 황소. 보통 살지고 윤택하나 억세지 못하다.
- 길표 뜻명사
길 가는 사람의 편의를 위하여 도로의 뻗어 나간 방향이나 이정(里程) 따위를 표시하여 길가에 세운, 돌이나 나무로 된 푯말.
- 길하다 뜻형용사
운이 좋거나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 길항 뜻명사
서로 버티어 대항함.
- 길행 뜻명사
혼인이나 환갑 따위의 경사스러운 일로 떠나는 여행.
- 길혈 뜻명사
풍수지리에서, 좋은 묏자리를 이르는 말.
- 길흉 뜻명사
운이 좋고 나쁨.
- 길흉화복 뜻명사
좋은 일과 나쁜 일, 불행한 일과 행복한 일.
- 김 뜻명사 · 의존 명사
액체가 열을 받아서 기체로 변한 것.
- 김가기 뜻명사
신라의 학자(?~859). 중국 당나라에 들어가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여 학식과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만년에는 ≪선경(仙經)≫, ≪노자도덕경≫ 따위를 연구하였다.
- 김가진 뜻명사
대한 제국 때의 문신·독립운동가(1846~1922). 호는 동농(東農). 주일본 판사대신(判事大臣)으로 수년간 도쿄에 주재하였으며, 귀국 후 농상공부 대신을 지냈다. 대동단(大同團) 고문을 거쳐 1920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 정부 요인으로 활약하였다.
- 김간 뜻명사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646~1732). 자는 직경(直卿). 호는 후재(厚齋). 박세채·송시열의 문인(門人)으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에 ≪동유예설(東儒禮 說)≫, ≪후재집≫ 따위가 있다.
- 김감 뜻명사
조선 전기의 문신(1466~1509). 자는 자헌(子獻). 호는 일재(一齋)·선동(仙洞). 대제학, 좌찬성 겸 예조 판서 등을 지냈고, 중종반정에 가담한 뒤에 병조 판서가 되었다.
- 김개 뜻명사
조선 중기의 문신(1504~1569). 자는 방보(邦寶). 호는 독송정(獨松亭). 대사간, 대사헌 따위를 지냈다. 조광조 일파를 비방한 일로 관직을 삭탈당한 뒤에 분사(憤死)하였다.
- 김개남 뜻명사
구한말의 동학 접주(1853~1895). 자는 기선(箕先)·기범(箕範). 전봉준 다음가는 남접(南接)의 지도자로, 한때 남원을 점거하여 동학 군정(軍政)을 실시하였다. 일본군과 합세한 관군에게 잡혀 처형되었다.
- 김개시 뜻명사
조선 광해군 때의 상궁(?~1623).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 국정에 관여하여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정치를 어지럽혔다. 인조반정 때 처형되었다.
- 김거복 뜻명사
조선 고종 때의 판소리 명창(?~?). 서편제(西便制)를 이었고, 아름답고 풍부한 성량으로 이름을 떨쳤다. 를 잘 불렀고 특히 용왕 득병(龍王得病) 대목에 뛰어났다.
- 김겸광 뜻명사
조선 전기의 문신(1419~1490). 자는 위경(撝卿). 세조 6년(1460) 건주위(建州衛)의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웠고 예조 판서, 공조 판서 등을 지냈다.
- 김겸왕 뜻명사
가야의 제9대 왕(?~521). 질지왕(銍知王)의 아들로서, 재위 기간은 492~521년이다.
- 김경남 뜻명사
대한 제국 때의 거문고 명인(?~?). 이병문(李柄文), 함재운과 함께 거문고의 삼절(三絕)로 꼽힌다. 조양 구락부(調陽俱樂部)를 만들어 연주와 후진 양성에 힘썼고, 말년에는 악보 편찬 사업을 주관하였다. 유보(遺譜)로 ≪금보(琴譜)≫가 전한다.
- 김경서 뜻명사
조선 중기의 무신(1564~1624). 초명은 응서(應瑞). 자는 성보(聖甫). 임진왜란 때 많은 무공을 세우고, 포도대장, 북로 방어사 등을 지냈으며, 명나라의 요청으로 후금을 치기 위하여 출정하였다가 강홍립이 항복할 때 함께 포로가 되었다. 적정(敵情)을 기록하여 조선에 보내려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 김경손 뜻명사
고려 고종 때의 장군(?~1251). 정주(靜州)와 귀주(龜州) 등지에서 몽고군의 침입을 격퇴하였고, 이연년 일당을 소탕하였다. 뒤에 최항의 시기로 백령도에 유배되어, 바다에 던져져서 죽었다.
- 김경징 뜻명사
조선 중기의 문신(1589~1637). 자는 선응(善應).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고 도승지, 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강화가 함락되자, 강도 검찰사(江都檢察使)로서 수비에 소홀했다는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아 처형되었다.
- 김경탁 뜻명사
철학자(1906~1970). 호는 우암(愚庵). 중국 베이징의 중국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고려 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저서에 ≪중국 철학 사상사≫, ≪율곡(栗谷) 연구≫ 따위가 있다.
- 김경태 뜻명사
독립운동가(1874~1921). 1913년 광복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친일 부호(富豪) 박용하(朴容夏)를 사살하는 등 활약이 컸으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사형당하였다.
- 김계선 뜻명사
국악인(1891~1943). 호는 죽농(竹濃). 대금(大笒)의 명인(名人)으로, 악기를 잘 다루었으며, 특히 저음(低音)의 평조회상과 고음(高音)의 청성 자진한잎에 뛰어났다.
- 김계철 뜻명사
조선 후기의 명창(名唱)(?~?). 여덟 명창의 한 사람으로 에 뛰어났으며, 판소리계에서 석화제라는 유파를 형성하였다.
- 김계휘 뜻명사
조선 중기의 문신(1526~1582). 자는 중회(重晦). 호는 황강(黃岡). 명종 때 김홍도(金弘度)의 일파라 하여 쫓겨났으나 복직하여 부승지, 전한(典翰), 직제학(直提學)을 지냈다.
- 김공량 뜻명사
조선 선조 때의 척신(戚臣)(?~?). 선조의 총애를 받던 인빈(仁嬪) 김씨의 오빠로, 세자 책봉 문제로 정철을 몰아내었으며, 내수사 별좌가 되었으나 백성들의 항의로 선조가 처형을 명하자, 강원도로 도피하였다.
- 김공정 뜻명사
고려 인종 때의 의원(醫員)(?~?). 처음에는 묘청의 난에 가담하였으나, 토벌군과 내통하여 묘청의 목을 베었다.
- 김관보 뜻명사
독립운동가(1882~1925). 호는 석산(石山). 김좌진 등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만주와 국내를 오가면서 군자금을 모금하고, 일본 기관을 습격하는 데 가담하였다.
- 김관식 뜻명사
시인(1934~1970). 호는 추수(秋水)·만오(晩悟)·우현(又玄). 1955년 ≪현대 문학≫을 통하여 등단하였다. 박학한 한학을 바탕으로 동양인의 서정 세계를 노래하였다. 시집에 ≪김관식 시선≫, ≪낙화집(落花集)≫, 역서(譯書)에 ≪서경(書經)≫ 따위가 있다.
- 김관의 뜻명사
고려 중기의 학자(?~?). 검교(檢校) 군기감(軍器監)을 지냈으며, 의종 때 ≪편년통록≫을 편술하였다.
- 김광균 뜻명사
시인(1914~1993). 신석초, 서정주 등과 ≪자오선≫, ≪시인 부락≫ 따위의 동인지에서 활약하였다. 온건하고 회화적인 시풍을 나타내 1930년대 모더니즘 계열의 대표적 시인으로 평가된다. 시집에 ≪와사등≫, ≪기항지≫, ≪황혼가≫, ≪임진왜란≫ 따위가 있다.
- 김광섭 뜻명사
시인(1905~1977). 호는 이산(怡山). ≪해외 문학≫, ≪문예 월간≫의 동인이었으며, 식민지 시대의 지성인이 겪는 고뇌를 표현하였다. 시집에 ≪동경(憧憬)≫, ≪성북동 비둘기≫ 따위가 있다.
- 김광욱 뜻명사
조선 중기의 문신(1580~1656). 자는 회이(晦而). 호는 죽소(竹所). 1606년 증광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형조 판서, 좌참찬, 우참찬 등을 지냈다. ≪청구영언≫, ≪해동가요≫에 시조 22수가 전한다. 저서에 ≪죽소집≫이 있다.
- 김교헌 뜻명사
대종교(大倧敎)의 제2대 교주(1868~1923). 자는 백유(伯猷). 호는 무원(茂園)·보화(普和). 대사성, 규장각 부제학을 지냈다.
- 김구 뜻명사
독립운동가·정치가(1876~1949). 자는 연상(蓮上). 호는 백범(白凡)·연하(蓮下). 본명은 창수(昌洙). 동학 농민 혁명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 쫓겨 만주로 피신하여 의병단에 가입하였고, 3·1 운동 후 중국 상하이(上海)의 임시 정부 조직에 참여하였다. 1928년 이시영 등과 함께 한국 독립당을 조직하여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휘하였다. 1944년 임시 정부 주석으로 선임되었고, 8·15 광복 이후에는 신탁 통치와 남쪽 지역의 단독 총선을 반대하며 남북 협상을 제창하다가 1949년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당하였다. 저서에 ≪백범일지≫가 있다.
- 김귀 뜻명사
고려 말기의 무신(?~1367).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왕을 호종하였으며, 1363년 동북면 병마사가 되어 이성계와 함께 여진 정벌에 공을 세웠다. 신돈에게 살해되었다.
- 김근 뜻명사
고려 중기의 학자(?~?). 김부식의 아버지로 벼슬이 예부 시랑(禮部侍郞)에서 국자좨주(國子祭酒),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까지 올랐다. 박인량의 시문과 함께 ≪소화집(小華集)≫을 발간하였다.
- 김낙 뜻명사
고려의 개국 공신(?~927). 927년 견훤(甄萱)과 싸우다가 포위된 태조를 대장 신숭겸과 함께 구하고 전사하였다. 뒤에 예종은 그와 신숭겸을 추도하여 를 지었다.
- 김녕굴 뜻명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현무암 동굴. 예전에 이 굴에 사는 뱀에게 매해 봄가을에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는 전설이 있다. 만장굴과 함께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천연기념물 정식 명칭은 ‘제주 김녕굴 및 만장굴’이다. 길이는 705미터.
- 김농 뜻명사
중국 청나라의 문인·화가(1687~1763). 자는 수문(壽門). 호는 동심(冬心). 양주 팔괴(揚州八怪)의 한 사람으로, 기행(奇行)으로 유명하며 일생을 처사(處士)로서 끝마쳤다. 대나무, 매화, 불상을 잘 그렸다. 저서에 ≪동심선생집≫이 있다.
- 김늑 뜻명사
조선 중기의 문인(1540~1616).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柏巖). 이황의 문인(門人)으로, 임진왜란 때 안집사(安集使)로 영남 지방의 민심을 수습하고, 이어 대사헌이 되어 시무(時務) 16조를 상소하였다. 저서에 ≪백암문집≫이 있다.
- 김담 뜻명사
조선 전기의 문인·천문학자(1416~1464).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 역학(曆學)의 기본이 된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을 엮어 세종 대의 천문·역법 사업에 크게 공헌하였다. 문집에 ≪김문절공일고(金文節公逸稿)≫가 있다.
- 김도나 뜻명사
통일 신라 초기의 문신(?~?). 신문왕 9년(689)에 일본 천황 덴무(天武)의 조상(弔喪)을 위하여 사신으로 갈 때, 명총(明聰), 관지(觀智) 등의 학승(學僧)과 함께 금동 아미타 상 따위를 가지고 가서 불교 전파에 공헌하였다.
- 김돈 뜻명사
조선 시대의 문신·천문학자(1385~1440). 태종 17년(1417)에 문과에 급제하고 직제학, 이조 판서를 지냈다. 세종의 명을 받아 간의대(簡儀臺), 보루각(報漏閣) 따위를 만들었다.
- 김두헌 뜻명사
철학자·교육자(1903~1981). 호는 예동(汭東). 숙명 여자 대학교, 전북 대학교 총장 등을 지냈으며 저서에 ≪윤리학 개론≫, ≪서양 윤리학사≫ 따위가 있다.